1편에서 AX는 사람 줄이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는 일 같다고 썼다. 그때는 느낌에 가까웠다. 몇 달 동안 해 보니 이제는 좀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AI를 쓰면 일은 확실히 빨라진다. 그런데 사람이 할 일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쉽게 되네, 그럼 사람을 줄이자?
전사 AX 얘기를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반응이 있다. 직접 안 해 봤거나 살짝만 만져 본 분들, 특히 임원분들 쪽에서 많이 나온다.
쉽게 되네.
맞다. 쉽게 된다. 요즘 코딩 에이전트는 정말 좋아져서 뭘 시키면 금방금방 나온다. 화면도, 문서도, 시안도.
문제는 그다음 생각이다. 금방 나오니까 사람이 덜 필요하겠다, 인력을 줄여도 되겠다. 해 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건 좀 잘 모르는 생각이다.
빨라진 시간은 어디로 갔나
빨라지는 건 맞다. 그럼 예전에 하던 만큼만 하고 남은 시간엔 손을 놓느냐. 아니다.
눈이 높아진다.
예전에는 사람이 직접 만들었으니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선이 있었다. 거기까지 만들어서 제출하고, 컨펌 받고. 그런데 AI로 초안이 금방 나오면 그 선에서 멈춰지지가 않는다. 한 번 더 고쳐 보고, 다른 안도 뽑아 보고, 틀린 데 없나 다시 본다. 빨라진 시간은 고스란히 검수와 재작업으로 들어간다.
점수로 치면 예전엔 10점짜리를 내던 일을 이제 100점까지 끌고 가는 셈이다. 만드는 건 AI인데, 보고 고르고 다시 시키는 건 사람이다.
우리 사이트에서 있었던 일
말로만 하면 감이 잘 안 오니 얼마 전 이 사이트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 적어 본다.
이 사이트에는 한글 문서 도구가 있다. 광고 심사를 다시 넣기 전에 도구 설명을 보강하는 일을 AI 직원 서아에게 맡겼다. 서아는 이 사이트의 글과 콘텐츠를 만드는 담당이다. HWP↔HWPX 변환, 텍스트 추출, 이미지 변환 세 도구는 사용법이 한 단계뿐이었다.
예전 기준이면 사용법을 세 단계로 늘리고 끝났을 일이다. 서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표가 든 3쪽짜리 신청서를 만들어 공개 도구에 직접 넣고 결과를 쟀다.
| 도구 | 잰 결과 |
|---|---|
| HWP↔HWPX 변환 | HWP 15.5KB → HWPX 8.9KB, 옮기지 못한 요소 없음 |
| HWP 텍스트 추출 | 3,746자, 1초 안에 나옴 |
| HWP를 이미지로 | JPG가 PNG보다 15%만 작음(1.4MB → 1.2MB), 크기를 "작게"로 고르면 275KB |
재 보니 기존 설명에 틀린 데도 있었다. "JPG는 용량이 작다"고 써 놨는데, 글자 위주 문서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용량을 줄이려면 형식보다 크기를 낮추는 쪽이 훨씬 나았다. 그 문구도 결과에 맞게 고쳤다.
일은 분명 늘었다. 설명 몇 줄 고치는 일이 시험 문서 만들기, 재기, 틀린 설명 찾아 고치기까지 커졌다. 대신 결과물은 다른 사이트를 옮겨 적어서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이 됐다.
나만 높아지는 게 아니다
이 눈높이는 나 혼자 올라가는 게 아니라서 더 문제다.
광고주 일이든 대행사 일이든 마찬가지다. 나도 AI로 만들고, 경쟁사도 만들고, 옆 팀도 만든다. 다들 같은 도구를 쓰니 결과물이 다 같이 좋아진다. 그러면 받는 쪽은 예전 수준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더 적은 비용에 더 많은 걸, 더 빨리 원하게 된다.
비용이 내려갈지 올라갈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출발선 자체가 올라간다는 거다. 혼자 눈을 낮추고 싶어도 시장이 그렇게 두지 않는다.
안 하던 일까지 할 일이 된다
하나 더 있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다.
1편에서 개발자가 아니어도 화면이 뜬다고 썼다. 그게 실제로 되면 '할 수 있음'에서 끝나지 않고 할 일 목록에 올라간다. 게임을 안 만들어 본 사람이 게임을 만들고, 개발을 안 해 본 사람이 개발을 한다.
이 사이트도 그렇다. 기획하는 사람이 굴리는 사이트인데 브라우저 게임이 네 개 돌아간다. 얼마 전에도 그중 하나인 수호자의 항해에 전용 원화와 공략을 갖춘 섬이 10개 늘었다. 예전 같으면 애초에 목록에 없었을 일이다.
그래서 사람을 줄인다는 말은 앞뒤가 안 맞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 빨라진 만큼 눈이 높아지고, 그 차이를 메우는 건 사람이다.
- 다 같이 높아지니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렵다.
- 안 하던 일까지 할 일이 된다.
사람을 줄이겠다는 말이 맞으려면 눈을 예전으로 낮춰야 한다. 품질은 예전만큼이면 되고, 안 하던 일은 계속 안 한다. 그러면 말이 된다. 그런데 AX를 하는 이유가 품질은 높이고 속도는 빠르게 하자는 거 아닌가. 둘을 다 원하면서 사람을 줄이자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 거다.
내가 보는 전사 AX는 결국 세 가지다. 안 하던 일을 하게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하던 일의 결과물이 올라간다.
결국 남는 건 노하우
그럼 뭐가 경쟁력이 될까. 내가 보기엔 노하우다.
AI가 끌어올리는 결과물도 결국 그 사람이 아는 만큼이다. 앞의 도구 설명도 직접 재 봤기 때문에 틀린 문구가 드러났다. 뭘 재 봐야 하는지, 나온 결과에서 뭐가 이상한지 아는 게 지식이고, 그건 써 보면서 쌓인다.
좋은 모델을 쓰면 당연히 유리하다. 그래도 더 작은 모델로 같은 결과를 내는 사람, 같은 결과를 더 적은 비용으로 내는 팀이 결국 앞서갈 것 같다. AI를 쓸수록 그런 노하우가 생기고, 그걸 가진 쪽이 또 한 발 나간다.
이런 시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