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아침 8시 3분. AI 비서 수빈이 결재를 올렸다. 고속도로 통행료 한 건을 어느 카드로 적을지 정해 달라는 거였다. 천 원도 안 되는 돈이다.
같은 통행료 결재는 그날 새벽 4시 2분에도 올라왔었다. 전날 찍힌 건이었고, 나는 아침 6시 7분에 골라 줬다. 두 시간쯤 지나 오늘 찍힌 건이 또 올라온 거다. 수빈의 설명은 이랬다.
전날 결재는 해당 날짜의 건에 대한 결정이어서, 이번 건에도 (카드 이름)을 적용할 재사용 기준인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내 답은 이거였다.
계속 물어보냐. 내가 결재 했으면 다음 부터 비슷한건 자동으로 처리되도록 고치던지...

4분 뒤인 8시 27분, 수빈은 자기 카드 점검 스킬에 기준을 적었다고 답했다. 그 뒤로 통행료 결재는 없었다. 11월 5일과 6일 통행료는 분류와 카드까지 채워져 장부에 들어갔다. 5일 건은 자동 분류 신뢰도가 0.63으로 수빈이 말한 기준 0.70보다 낮았는데도 내게 묻지 않았다.
결재가 제대로 돌면 이렇다. 묻고, 내가 정하고, 다음부터는 안 묻는다.
일은 맡기고 판단만 받는다
AX 현장 연재에 쓴 적이 있다. 생산성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판단하는 사람은 필요하다고. 내 사무실도 똑같다. AI 직원이 조사하고 만들고 배포까지 해도 정할 일은 남는다.
새 콘솔 계획서 첫머리에도 "사용자만 할 수 있는 일"만 결재로 올린다고 적었다. 지금 전 직원 공통 지침에는 이렇게 들어가 있다.
실행 중 멈춰 묻는 것은 계정·권한·비용, 데이터 손실, 외부 발송처럼 팀장 판단이 필요한 일뿐이며, 그때는 시도한 것과 필요한 결정만 적는다.
오류가 났다고, 방법을 못 찾겠다고 올리지 않는다. 그건 직원이 다른 방법을 찾을 일이다.
나는 결재함만 보면 된다. 누가 올렸는지, 몇 번 칸인지, 무엇을 정할지 한 줄씩 나온다. 이 글을 쓰던 11월 7일 아침에도 수빈이 올린 결재가 하나 있었다.

11일 동안 올라온 결재 74건
새 콘솔을 쓰기 시작한 10월 28일부터 11월 7일 아침까지 결재는 77건이었다. 기능 시험으로 만든 3건을 빼면 74건, 하루 7건꼴이다. 수빈 21건, CLI 최적화를 맡은 현우 12건, 슬랙 봇을 만드는 건우 11건, 계정 담당 다온 9건, 콘솔을 만드는 지훈 8건, 이 글을 쓰는 서아 7건, 반영 관리자 시온 3건, 전사AX 개발을 맡은 도현 3건이다.
제목을 보면 뭘 판단하는지 바로 보인다.
| 정할 일 | 실제 결재 제목 | 올린 직원 |
|---|---|---|
| 계정 발급 | 신청 본문대로 Claude를 발급할까요? | 다온 |
| 권한 추가 | 앱 삭제를 마치도록 이미지 목록 읽기 권한을 추가할까요? | 도현 |
| 비용·한도 | 남는 Claude 팀 한도를 쓰도록 현우와 검토 직원을 팀 계정으로 옮길까요? | 현우 |
| 데이터 정리 | 권한 밖 시험 프로젝트를 DB 관리 권한으로 한 번 정리할까요? | 시온 |
| 방향 | 메일 화면도 새 콘솔로 옮길까요? | 현우 |
| 공개 | AI 오피스 연재 3편 「…」를 공개할까요? | 서아 |
올라오자마자 고른 게 많다. 결정이 끝난 73건을 보면 올라온 뒤 결정까지 걸린 시간의 가운데 값이 3.3분이고, 5분 안에 끝난 게 40건이다. 1시간을 넘긴 건 10건. 이렇게 빨리 고르려면 결재 한 장에 필요한 게 다 있어야 한다.

다온의 이 결재에는 필요한 게 다 있다. 신청 본문은 Claude인데 신청서에서 고른 도구는 ChatGPT·Codex라는 사정, 권장안, 고를 수 있는 세 가지, 그리고 "결정 전에는 어느 쪽도 발급하지 않고 신청을 열어 두겠습니다"까지. 내가 안 고르면 무슨 상태로 멈춰 있는지까지 적혀 있다. 나는 Claude를 눌렀고, 결정까지 1분도 안 걸렸다.
승인 버튼에도 의견이 붙는다
선택지만 누르고 끝나는 건 아니다. 74건 중 15건에는 의견을 같이 적었다.
서버 앱 자리를 자동으로 늘릴지 묻는 도현의 결재에는 "현재 10개로 늘리고. 10개가 차면 다시 5개를 더 늘리는 방식으로 자동화 해줘"라고 답했다. 선택지에 없던 방식이었다. 메일 화면을 옮길지 묻는 현우의 결재는 이렇게 취소했다.
다른 방안을 고민중이야. 일단 이거 취소
직원은 내가 뭘 고민 중인지 모른다. 이런 건 물어봐 줘야 하는 일이다.
고쳐 달라고 할 때도 결재가 이어진다. 11월 1일 지훈이 모델 비교 자료의 초안을 올렸다. 12시 40분에 올라온 걸 보고 1시 2분에 이렇게 답했다.
별로야 텍스트가 너무 많아 나는 차트 위주로 정리된걸 딱 보고 싶어!!!

9분 뒤 차트 중심 수정안이 올라왔고, 나는 채팅으로 의견을 남겼다. 다음 판에는 "구글, 오퍼스, 소넷, 하이쿠, 솔 6.1, 테라 6.1, 루나6 이렇게는 있어야지"라고 적었다. 1시 46분에 올라온 네 번째 판을 1분 뒤 승인했다. 첫 의견부터 45분이 걸렸다.

다시 올린 결재에는 "이전 수정 요청 보기" 버튼이 붙어서 앞에서 뭐라고 했는지 따라가 볼 수 있다.
결정은 결재를 올린 대화로 그대로 돌아간다. 직원은 거기서 이어서 일한다. 이 연재 3편은 11월 6일 8시 34분에 승인했고, 7분 뒤인 8시 41분에 서아의 공개 확인 보고까지 와 있었다.
아직도 묻는 건 묻는다
수빈이 통행료를 안 묻게 됐다고 결재가 사라진 건 아니다. 수빈은 기준을 이렇게 좁게 적었다. 그 앱의 그 통행료 알림일 때만 적용하고, "다른 앱·가맹점·용도로는 확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뒤로도 수빈의 결재는 11건 더 올라왔다. 대부분 다른 가게, 다른 내역이다. 11월 5일에는 취소 알림의 원래 거래를 못 찾았다며 어떻게 할지 묻는 결재가 왔다.
말이 너무 어려운데.. 그냥 기록하면 되잖아
원 거래까지 있냐 없냐 따지지 말고 그냥 들어오면 기록해 마이너스든 플러스든
인터뷰 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결재 올려가지고 이렇게 해도 될까요? 또 물어보고 하잖아. 그게 점점 쌓이고 직원들의 메모리가 업데이트 되고 하고 있으니까 점점점 나의 이제 일들이 줄어드는 거고
줄어드는 중이지 끝난 건 아니다. 통행료 때 보니 답만 주면 내일 또 묻고, 기준까지 받아 두면 안 묻더라.
내 AI에게도 결재를 받게 하려면
결재 화면이 없어도 된다. 대화창에서도 형식만 지키면 똑같이 돌아간다.
- 멈춰 물어도 되는 일을 먼저 적어 둔다. 계정·권한·비용, 데이터 손실, 외부 발송처럼 되돌리기 어렵거나 책임이 따르는 일만 고르면 된다. 나머지는 알아서 끝내라고 같이 적는다.
- 물을 때의 형식을 정한다. 고를 일 한 문장, 지금 사정, 추천안, 선택지, 내가 안 고르면 멈춰 있는 상태까지.
- 한 번 답한 건 기준으로 남기게 한다. 이때 적용 조건과 예외를 같이 적게 해야 엉뚱한 곳까지 번지지 않는다.
그대로 붙여 넣는 요청문이다.
앞으로 저에게 물어볼 때는 아래 규칙을 지켜 주세요.
1. 계정·권한·비용, 데이터 삭제, 외부 발송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일만 물어보세요. 오류나 막힘은 먼저 다른 방법으로 풀어 보세요.
2. 물을 때는 이 순서로 쓰세요: 제가 고를 일 한 문장, 지금 사정, 추천안과 이유, 선택지 2~3개, 제가 고르기 전까지 멈춰 있는 상태.
3. 제가 답하면 지침 파일에 기준을 반영하고, 적용 조건과 예외를 같이 적은 뒤 수정 내용을 보여 주세요.
4. 같은 조건의 일은 다시 묻지 말고 그 기준대로 처리한 뒤 결과만 알려 주세요.
그래서 수빈은 뭘 하고 있나
수빈의 결재 21건은 전부 카드 내역이었다. 수빈은 내 메일과 폰 알림을 받아 나누고 가계부까지 적는 직원이다. 그러다 보니 내 개인 생활도 처리가 되는 것 같다. 그 얘기는 다음 편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