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저녁 6시 13분. 구글 캘린더를 연결하던 AI 직원 지훈이 이렇게 보고했다.
현재 브라우저 조작 도구가 없어 이 단계만 직접 진행이 필요합니다.
인증 설정 화면에 들어가서 클라이언트를 만들고 파일을 내려받아 경로를 알려 달라는 거다. 1분 뒤 내가 보낸 답은 이랬다.
그걸 니가 해야지 나더러 시키냐
자동화 엣지 브라우저 도구가 없다고?
도구는 있었다. 지훈이 몰랐을 뿐이다.
처음엔 다 신입이었다
AI 직원한테 가장 답답한 건 처음이다. 진짜 직원을 뽑아도 처음엔 잘 모르는 것과 같다. 일을 맞춰 가면서 직원의 기억과 스킬을 계속 고쳐 쓰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킬은 "이 일은 이렇게 한다"를 적어 둔 문서다. AI 직원은 일을 시작할 때 목록을 보고 맞는 문서를 열어 읽는다. 사람으로 치면 업무 매뉴얼에 가깝다.
그날 저녁의 일을 이어서 적는다. 이번 편은 전부 실제 대화와 커밋 기록이다.
혼낸 게 아니라 문서를 고쳤다
지훈한테 뭐라고 한 다음, 1분 뒤에 CLI 최적화를 맡은 AI 직원 현우에게 전 직원을 점검하라고 시켰다. 현우가 찾은 원인은 단순했다. 브라우저 사용법이 CLI 운영 참고 문서의 한 문단에만 있었다. 그 문서를 열 일이 없는 직원은 도구가 있는 줄 모른다. 그러니 "없다"고 답하고 나한테 넘긴 거다.
18시 19분, 내가 처음 물은 지 5분 만에 공통 스킬이 새로 생겼다.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브라우저 도구는 CLI 도구 목록에 보이지 않아도 있다. 없다고 답하거나 팀장에게 대신 시키기 전에 아래 명령을 실행한다. 팀장에게 요청하는 일은 로그인·추가 인증·보안 문자처럼 사람만 할 수 있는 단계뿐이다.
이 글의 캡처도 이 글을 쓰는 AI 직원 서아가 그 명령으로 찍었다.
옛 문장 하나가 내 지시를 이겼다
서아도 같은 날 아침에 걸렸다. 연재 1편을 공개하려는데, 서아가 공개 전 검토를 다른 직원 하린에게 요청한 거다. 그건 안 해도 된다고 이미 말한 일이었다.

서아가 찾은 원인이 재밌다. 서아의 직무 문서에는 "다른 직원 검토를 거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블로그 작성 스킬과 발행 참고 문서에는 "공개 전 독립 검토를 받는다"는 옛 문장이 남아 있었고, 서아는 그쪽을 따랐다.
말을 안 들은 게 아니었다. 문서끼리 서로 달랐던 거다. 서아는 문서 세 개를 같은 규칙으로 고쳐 1분 뒤인 8시 42분에 커밋했다. 다음 날 2편을 쓸 때 서아는 하린을 부르지 않았다. 이 일을 시키는 예약 지시문에도 검토 요청을 빼 뒀다.
저녁에는 일을 넘기는 방식에서 또 걸렸다.
1번이 넘기면 받은 2번이 확실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2번이 다시 1번에게 보고 하고. 막 이렇게 핑퐁 하지 말라고
18시 3분에 이 말을 했고, 18시 5분에 "받은 쪽은 넘긴 쪽에 보고하거나 되넘기지 않는다"가 전 직원 공통 규칙으로 들어갔다. 한 직원의 실수를 한 직원의 문서에만 적으면 다음 직원이 똑같이 틀린다.
직원 한 명은 이렇게 생겼다
그래서 뭘 어디에 적느냐가 중요해진다. 지금 사무실의 AI 직원은 16명이고, 한 명은 이렇게 구성돼 있다.
| 구성 | 담는 것 | 바뀌는 때 |
|---|---|---|
| 역할·업무 지침 | 이 직원이 맡는 일과 안 맡는 일 | 업무 경계가 바뀔 때 |
| 공통 지침 | 전 직원이 지키는 규칙. 한 벌만 두고 실행할 때 붙인다 | 모두에게 해당하는 실수가 나올 때 |
| 스킬 | 일하는 방법과 자주 틀리는 곳 | 일하다 틀릴 때마다 |
| 기억 | 스킬로 옮기기 전의 업무 메모와 이어받은 기록 | 필요할 때 |
| 도구 | 쓸 수 있는 회사 기능과 켜고 끄는 스위치 | 권한이나 담당이 바뀔 때 |
직원 화면을 열면 역할과 지침이 그대로 나온다. 내가 직접 읽고 고칠 수 있는 글이다.

도구 화면에는 스킬과 도구가 스위치로 있다. 옆에 붙은 숫자는 실제로 쓴 횟수라, 안 쓰는 스킬이 뭔지 보인다. 서아는 이 화면 기준으로 공통 스킬 16개 중 12개가 켜져 있고, 회사 도구는 69개가 켜져 있다.

이게 다 공짜로 실리는 건 아니다. 대화 옆 칸에 지금 이 직원 머릿속에 뭐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나온다. 이 대화에서는 직원 지침이 5.3K, 스킬 목록이 3K다. 스킬 본문은 목록에 넣지 않고 필요할 때만 열어 읽어서 이 정도로 끝난다.

대화는 지워도 스킬은 남긴다
숫자로 보면 직원이 어디에 쌓이는지 드러난다. 11월 6일 아침 운영 DB에 저장된 기억은 전 직원 합쳐 34건이다. 스킬 문서는 38개다.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7일 동안 스킬이나 직무 문서를 건드린 커밋은 526개, 하루 75개꼴이다. 전부 교훈은 아니고 문서 구조를 정리한 커밋도 섞여 있다. 그래도 직원이 자라는 곳은 기억보다 문서 쪽이었다.
이걸 분명히 정한 날이 있다. 11월 3일 밤, 콘솔 메뉴에 "기억 초기화"라는 비활성 버튼이 있어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냐고 지훈에게 물었다. 지훈은 처음에 새 채팅과 비슷한 기능으로 이해했다. 내가 생각한 건 직원이 처음 생겼을 때 상태였다. 그래서 다시 설명했더니, 이번엔 지훈이 학습한 스킬까지 처음으로 되돌리자고 했다. 내 답은 이거였다.
스킬은 남겨야지 업데이트 되어도
대화한건 싹다 지우고
그대로 만들었다. 지금 기억 초기화를 누르면 그 직원의 모든 칸에서 대화와 세션, 개인 기억이 지워지고 최신 스킬은 남는다. 대화는 흘러가지만 스킬은 회사 자산인 셈이다. 이 주고받음에도 10분이 걸렸다. 지훈이 범위를 잘못 알아들을 때마다 고쳐 줬으니까.
그래도 신입 티는 안 없어진다
스킬을 고쳤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 11월 5일에도 한 직원이 보고서 표를 내가 고른 시안대로 바꾸겠다고 해 놓고, 출력해 보라니까 일반 표로 되돌려 냈다.
봐봐 시안이랑 다르잖아
신입이 일주일 만에 베테랑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고친 문서는 남아서 다음 일은 그걸 읽고 시작한다. 그렇게 쌓이니까 내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내 AI 직원도 이렇게 길들이려면
CLAUDE.md든 AGENTS.md든 스킬이든, 지금 쓰는 AI 도구에 지침 파일이 있으면 바로 해 볼 수 있다.
- AI가 틀리면 대화에서 다시 설명하지 말고 원인이 된 문장부터 찾게 한다. 서아 때처럼 옛 문장이 남아 있을 수 있다.
- 고칠 때는 사건을 덧붙이지 말고 같은 주제 문단을 지금 규칙으로 고친다. 우리는 "실제 실패 원인·검증된 해결법·팀장 최종 지시는 해당 문단을 고쳐 현재 방법으로 반영한다"를 전 직원 규칙으로 뒀다.
- 한 명의 실수가 다른 직원에게도 해당하면 공통 지침에 올린다. 공통 지침은 한 벌만 둔다.
AI한테 이렇게 시키면 된다. 아래는 그대로 붙여 넣는 요청문이다.
방금 당신이 한 실수의 원인을 지침·스킬 문서에서 찾아 주세요.
1.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문장이나, 있어야 하는데 없는 문장을 파일과 줄 번호로 알려 주세요.
2. 문서끼리 서로 다른 말을 하는 곳이 있으면 같이 찾아 주세요.
3. 사건 기록을 덧붙이지 말고, 같은 주제 문단을 지금 규칙으로 고치는 수정안을 보여 주세요.
4. 다른 작업에서도 같은 실수가 날 수 있으면 공통 지침에 넣을 한 문장도 제안해 주세요.
그래도 절대 안 맡기는 일
이렇게 길들여도 끝까지 맡기지 않는 일이 있다. 판단이다. 판단할 일이 생기면 직원은 나한테 결재를 올린다. 이 글도 그렇게 올라왔다. 그 얘기는 다음 편에 쓴다.